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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앞집 아저씨가 집을 짓기 위해 거짓말을 한 이유 - 일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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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생이던 약 18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저희집과 골목을 사이에 둔 건너편 집이 집을 헐고 새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집은 원래 단층집이었는데, 집주인 아저씨의 말로는 2층으로 올린다고 하더군요. 

그 집이 저희집의 남쪽 방향이어서 부모님은 살짝 걱정을 하셨습니다만 2층 높이를 생각해보니 햇볕을 막거나 하지는 않을것 같더군요. 
하기사 본디 성품이 유순하시고 이웃대하기를 가족같이 대하시는 분들인데다 앞집 아저씨는 저희 아버지께 "형님" 이라고 하며 종종 술도 같이 하시는 분이어서 3,4층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과연 어찌 하셨을까 싶은 분들이었는데 2층으로 올린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요. 

그런데 이웃 아주머니들께서  마실을 오셔서 한마디씩 하시더군요. 
3층 올린데요. 어쩔라구 그냥둬요?

부모님은 설마... 하셨습니다. 
앞집 아저씨가 거짓말을 했을까 했던거죠. 




하지만, 결국은 3층집 이더군요. 
공사하시는 분께 여쭈었더니 3층이랍니다. 
앞집 아저씨가 혹여 집을 못짓게 할까봐 거짓말을 하신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걱정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다른것은 관두고 평생을 고생고생 하셔서 집하나 장만했는데 일조권이 나빠져서 집값이 떨어질까봐 걱정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저희 형제가 이리 저리 알아보고 공사가 되어가는 상황등으로 준공후의 앞집 높이를 감안해서 태양의 움직임등을 관찰해보니 소송을 제기하면 일단 공사는 멈추어지고 소송결과에 따라 설계변경을 강요할 수도 있는 상황이더군요.  나름 판단으로는 승소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였습니다. 




일조권에 대한 규정은 복잡하지만 그중  
주거지역 안에 건축하는 건축물의 각 부분의 높이는 그 부분으로부터 정북방향으로 인접한 지대의 경계선까지 수평거리의 2배 이하여야 한다
는 규정은 분명히 어기고 있었습니다. 

또 
생활상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권리로 파악되는 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는 일조권의 침해가 있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의 청구, 건축의 중지 및 건축물의 개선·제거를 요구할 수 있다.
는 규정을 감안하면 건축을 중지 시킬 수 도 있지요. 

 - 덕분에 일조권 공부 많이 했습니다. ㅡ.ㅡ





부모님께 소송을 걸자고 말씀드렸지만,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지요. 
이웃과 원수지으며 사실 분들이 절대 아니니까요. 

그저 아버지께서 앞집 아저씨를 불러다 놓고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앞집 아저씨는 사실은 이러저러... 어쩌구... 변명을 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 하시더군요. 

 - 주차장을 만들건데 골목에 차댈곳도 마땅치 않으니 저희 주차장을 이용하세요. 
 - 집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게 블라인드를 달아드릴께요. 


독하게 마음 먹으면 
 - 손해배상을 받거나
 - 건축중단을 시키거나 
할수 있었지만 결국 마음씨 좋고 남주는 것은 잘해도 받거나 뺏는것은 못하시는 부모님은 그리 대충 넘겨버리셨습니다. 

블라인드는 달아주더군요. 
주차공간도 사용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개월 뿐이었지만요. 
주인이 집을 팔고 떠났거든요. 
계획된 일이었다면 우리 가족은 그냥 "속은 것" 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많이 속상해 하셨지만 한번도 후회하시는 모습을 보이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런 부모님을 보며 더욱 존경하게 되었구요. 
물론 제가 부모님 입장이었으면 절대 그냥 넘기지 않고 법대로 했겠지만 말입니다. ^^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수 밖에 없는 대도시에서 서로의 사생활과 재산권을 지켜주며 내 자신의 재산을 증식시키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서 까지 돈에 욕심을 내야 하는지, 오래도록 "형님" 이라고 부르며 술잔을 기울이던 제 아버지를 속여가며 집을 새로 짓고 싶어 했던 앞집 아저씨를 전 아직도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이해는 되지만 전 절대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네요. 

문득 옛기억이 떠오르면서 " 잘 산다는 것 " 에 대한 정의가 다시금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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