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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해리포터 읽으며 내가 되찾은 몇 가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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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시절 우리집 책꽂이에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많은 가정집들이 그러했듯이 몇가지 전집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한국 위인전집
세계 위인전집
한국 단편문학전집
세계 문학전집 

같은 책을이 안방 한쪽 벽을 작은 틈도 없이 마치 벽에 발라져 있는 벽지처럼 완전히 벽을 가린 각각이 공간마다 미닫이 방식의 유리문이 달려있던 커다란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두터운 외지를 갖춘 양장본에 금박띠까지 둘러진 어찌 보면 서민의 집을 장식하기에는 호사스러움까지 느껴지는 그러한 위엄까지 갖춘 책들은 사람들의 손을 그리 많이 타지 않아서 늘 여전히 새책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기사 우리 삼남매가 그 책들을 한번씩 본다고 한들 책 한권이 기껏해야 세사람의 손을 탓을 뿐이니 너덜너덜해지거나 많이 읽혀진 듯한 느낌을 줄리가 만무했더랬지요. 

방안을 이리 저리 마구 굴러다니는 만화책이거나 도서관에서 대여하는 책이 아닌 이상 누구네 집 책장의 책들이 낡아보이기까지 하겠습니까? 

각각 30권에서 50권 정도 하는 전집들이 4질 이상 있고 또 간혹은 단권짜리 책들도 있었음에도 난 그 책들을 거의 다 읽다시피 했더랬지요. 

위인전집들이야 한창 총칼 휘두르며 동네 골목길을 누비며 다니던 무렵의 남자아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무척 매력적인 책들이니 한번 잡으면 그 책의 주인공인 위인이 마지막 남기는 명언을 읽도록 놓지 않곤 했었지만 사실 문학전집들은 초등학생이 손쉽게 읽어 내려가기는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김동인님의 감자/발가락이 닮았다 , 염상섭님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나도향님의 물레방아, 황순원님의 소나기 같은 책들을 그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채 알지 못한채 읽어내려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론 그 내용같은 것은 잘 기억나지않습니다.  
심지어는 위에 적은 책의 제목들 조차 불혹의 나이로 녹슬어 버린 뇌리에 하도 가물가물 하여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쓰신 님들과 책 제목을 새삼 찾아보아야 할 정도네요. 

세계문학전집은 그 보다 더 어려워서 다른 책들이 쌀밥을 고깃국에 말아 먹는 느낌이라면 서양의 대문호들이 써내려간 그것들은 마치 혓바늘이 돋아 조금은 아프기도 하고 조금은 성가시기도 한 마당에 까끌까끌한 정부미로 지어 담은 식어빠진 도시락을 물에 말아 힘겹게 목으로 넘기는 그런 느낌 같기도 했습니다. 
( 이러한 표현들이 어쩌면 젊은 세대 분들에게는 어느 못사는 나라 이야기냐 싶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 

그래서 어떤 책들은 몇장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책들은 힘겹게 힘겹게 읽어나가다가도 결국 포기하고 그 끝을 보지 못한 책도 있었던 듯 싶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부터 주변에는 책이라고는 보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거슨...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 ^^;;;
한동안 드래곤볼, 슬랭덩크, 북두의 권, 4번타자 왕종훈 같은 만화책이 손에서 머물더니 한순간에 그것들도 사라져 버리더군요. 


 
 


뜨거움이 점점 그 세를 키워가던 올해 6월의 어느날 너무도 우연히 해리포터가 제 손에 쥐어졌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많이 팔렸다는 책이지만 그저 애들이나 읽는 동화책 쯤으로 여겼던 해리포터를 그 후로 손에서 놓을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 약 30여권의 시리즈를 가능한 천천히 읽었습니다. 

처음엔 순식간에 책에 빠져들어 오랜동안 실용서적과 신문기사들만 읽던 버릇으로 속독을 하듯 수십여장을 읽어 나갔지만 이내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서둘러 읽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었습니다.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다시 버릇이 나와 어느순간 서둘러 책장을 넘기는 스스로를 깨닫고 다시 몇장을 되짚어가 음미하며 읽다보면 그 세세한 묘사들이며 작가의 머리와 가슴에서 쏟아져 담긴 상상의 세계가 나에게도 펼쳐지고 있더군요. 

시나브로 나는 외로운 고아소년 해리가 되고, 그의 옆을 지키던 철없지만 의리 있는 친구 론이 되고, 혹은 그의 손에 들려진 불사조 꼬리 깃털이 들어 있는 서양호랑가시나무로 만들어진 마술지팡이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호그와트의 그리핀도르 기숙사에, 때로는 금지된 숲에, 때로는 세스트랄의 등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천천히 읽었음에도 해리포터는 그 장엄한 서사시의 마지막 줄이 읽혀지고 이제 제 손에서 떠났습니다. 



( 클릭하시면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구매하실수 있습니다. )




해리포터를 읽으면서 전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몇 가지를 되찾았습니다. 
1. 책을 천천히 읽는 능력
2. 의미만을 파악하는게 아니라 그 세세한 묘사를 즐길수 있는 능력
3. 얼마간의 잃어버렸던 동심

그리고 전 이제 다른 책을 가지고 다닙니다. 최명희 님의 "혼불".
해리포터를 탄생시키고 해리포터를 통해 책을 멀리하던 이가 책을 다시 가까이 하게 되면 기쁘겠다고 말한 조앤.K.롤링 의 바램대로 책을 사랑하게 된 또 한사람이 생긴 셈이지요. 

혼불을 손에 들자 국문학을 전공한 집사람이
" 당신이 그걸 읽을수 있을까 몰라. 그건 환타지 소설하고는 다르거든. 쫌 어려울꺼야 "
라며 알듯 모를듯 한 미소를 짓더군요. ( 비웃는 건지도...ㅡ.ㅡ)





해리      : "이건 현실인가요? 아니면 그냥 제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요?" 
덤블도어 : "물론 이것은 네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란다, 해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대체 왜 그게 현실이 아니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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